1대간 9정맥 종주/낙동정맥

낙동정맥 1구간: 몰운대 - 응봉 봉수대 - 봉화산 - 천마산 - 구덕산

청산은1 2010. 10. 27. 19:14

낙동정맥 1구간:  몰운대 - 3.1 – 홍치고개 (140) - 0.9 – 응봉 봉수대 (233.7m) - 2.9 – 봉화산 (149.6m) - 4 – 천마산 (247.2m) - 1.3 - 대티고개 - 2 – 시약산 (505m) / 구덕산(568m) - 2.6 - 엄광산(503.9m) - 2 - 개금사거리

도상거리: 18.8km  / 9 시간 15

 

2003 5 17/18 잔디밭 (W40,000) 맑음 / 구름

회비 40,000 + 회식 10,000 = 50,000

04:20        몰운대 해수욕장. 40인승 버스라서 자리가 넓다. 그러나 6개월 만의 무박 산행인지라 깊은 잠에 들지 못하고 비몽 사몽간에 부산에 도착했다. 군부대 통제간판이 있고 이내 정지소리가 들린다.  5 군부대 통제가 해제될 때까지 사진을 찍고 기다렸다. 몰운대는 낙동정맥의 끝자락이 대한해협으로 빠져들며 형성된 하나의 섬이다. 16세기까지만 해도 몰운도(沒雲島) 불리는 섬이었으나 낙동강에서 내려오는 흙과 모래가 쌓이어 다대포 육지와 연결되었다. 낙동강 하구에 안개와 구름이 끼는 날에는 속에 잠겨 보이지 않는다고 하여 몰운대(沒雲臺) 한다 

 

 

05:00        출발. 몰운산(78m) 몰운대의 몰운섬을 이루고 있는 산이다. 구릉에 가까운 산으로 산정부분이 둥그스레하고, 사면 또한 완만하나 산기슭의 부분은 낭떠러지의 단애를 이룬다. 전체가 짙은 송림으로 덮여 있기 때문에 두송산, 금티산과 함께 조선시대 경상 좌수영 관할의 봉산으로 지정되기도 했다.

05:10        몰운대. 다대포 객사(客舍: 부산시 유형문화재 3) 장군의 순의비(殉義碑 : 부산시 기념물 20) 그리고, 다대동 입구의 윤공단(尹公壇 : 부산시 기념물 9) 임란 당시의 처절한 격전을 일깨워 주고 있는 곳이다.  초소가 있는 몰운대는 절경이다. 다대 8경중의 하나인 몰운관해(沒雲觀海) 바로 이곳에서 바라다 보는 전경에 해당하는 같다.

05:30        오른쪽으로 산허리 길로 화손대에 들렀다가 기념 사진 촬영.

 

 

06:30        낙동강 하구. 응봉 초등학교을 지나 능선마루에 서니 좌측으로 강과 바다가 만나며 놀라운 생태계를 이루는 낙동강 하구가 활짝 열린다. 낙동강은 태백시 황지 못에서 발원하여 남해로 흘러 드는 남한에서 가장 강이다. 낙동강 하구둑과 을숙도 철새도래지로 유명하다.

 

 

06:35       응봉 봉수대(233.7m) 오른다.  표지석과 안내문이 서있는 응봉 봉수대는 군사통신 시설로 1898(고종 35)까지 사용되었으며 이곳의 봉수대는 1530(중종 25) 설치되었다는 기록이 있으며 이곳에서 서울까지 연락되었다고 한다.

 

 

 

07:05        다대고개. 장림과 다대를 잇는 유일한 고개로 특히 장꾼들이 많이 이용하던 고개라고 한다.

07:45       봉화산(149.6m). 삼각점

08:00        구평고개 / 장림고개.  옛날 장림김이 유명했다는데 일제시기에 일본 사람들이 건너와 김양식 많이 했으며, 때부터 김양식 생활수단이 되기도 했다. 60년대까지 집집마다 마루, 지봉 , 논밭 없이 새까맣게 김을 말리는 광경을 있었는데 1970년대 장림·신평공업단지가 조성되면서 물이 오염되어 김양식 쇠퇴했단다.

08:30        감천고개 / 괴정고개. 식당을 찾아 헤맸지만 문을 곳이 없다. 옥천 초등학교에서 간단히 아침식사를 하고 09:30 출발. 아파트 담장을 넘더니 개구멍까지 (?) 통과한다.

10:15       천마산 (247.2m). 돌탑 위에 우정탑이라 새겨져 있다.

 

 

10:40        까치고개를 지나고 대티고개에 도착. 1910 일제강점을 전후하여 지금의 천주교 아파트 부근에 아미 화장장이 설치되면서 영혼을 달래는 위령제가 자주 열렸고, 때마다 제물의 음식찌꺼기가 까치먹이로 제공됨에 따라 아미동·감천동·괴정동 일대의 까치가 한낮에도 먹이를 찾는 데서 '까치고개' 부르게 것으로 알려져 있다.

대티고개는 재첩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소나무가 울창하여 솔티(松峙) 불리기도 하는 고개는 본래 길이 험한데다가 산짐승과 도적들이 자주 나타나 부산장으로 하단 재첩을 팔러 가는 아낙네들이 괴정 삼거리에서 모여 함께 고개를 넘었다는 데서 재첩고개라는 이름이 생겨난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11:40        시약산 (565m) / 구덕산 (568m). 천문관측소가 자리잡고 있다. 서쪽으로 496.2m 승학산이 학이 나르는 날렵하게 솟아있다. 동남쪽으로 부산시가지와 영도, 구덕 운동장 그리고 바다에 떠있는 배들이 아스라이 잡힐 보인다.

구덕산 정상은 군부대 통신탑이 있고 출입통제지역이다. 구덕산의 유래는 순수한 우리말인 구덩이에서 것이다. 가파른 경사와 비탈뿐 아니라 아래에 움푹하게 깊이 구덩이가 많았다는 . 현재 구덕터널이 지나는 위의 구덕嶺을 "구덩이재"라고 일컬었다는 것을 감안하면 구덩이골 구덩이산으로 부르다가 한자로 舊德山이나 九德山으로 굳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구덕산을 사병산이라고도 한다. 병풍처럼 둘러진 산이라는데서 유래한 이름인 하다.

 

 

 

12:30        구덕령 (220m). 구덕기재, 구덕재 불리는 옛부터 대신동과 구포쪽으로 오가는 교통로로 구덕터널이 개통되기 전까지만 해도 부산에서 구포·양산·밀양·김해방면으로 가려면 고개를 넘어야 했던 왕래가 잦았던 고개로 이름나 있다. 고갯마루에는 꽃집으로 즐비하다.

13:00        엄광산(503.9m) / 고원견산(高遠見山). 고원견산이란 멀리까지 바라볼 있다는 의미에서 붙여진 지명으로 일본식 지명인데 1995 우리지명 바로 찾기 운동의 결실로 엄광산으로 고쳐 부르게 되었다.  멀리 빌딩숲 위로 우뚝 솟은 백양산이 모습을 들어낸다.

 

 

13:30        작은 오름내림 끝에 삼각점(부산 22, 1992) 있는 봉우리. 표지석이 있는 엄광산에서 5 분여 거리에 있고 삼각점이 있는 것으로 보아, 이곳이 엄광산 주봉이었던 모양이다. 돌탑이 있다.

14:15       개금 전철역 / 고려병원.

17:00        선종한 총무 고향이라고 미리 회식을 준비했다. 광안리에서 회를 먹고 서울로 출발하여 23:00시에 강남역에 도착했다. 오늘 산행은 시내 구간이 많고, 독도에 어려움이 많아 후미를 기다리는 시간이 많았다.

부산은 '富山'이란 명칭이 처음 기록되었는데 1481(성종12) 부자‘富'자가 가마솥‘釜'자로 명칭이 바뀌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