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변잡기/나의 이야기

동학사

청산은1 2020. 4. 28. 07:17

2020년 4월 27일(월)      날씨: 맑음


마누라, 작은 딸과 함께 동학사를 둘러 보다.


계룡산 동학사(鷄龍山 東鶴寺): 724(성덕왕 23) 상원(上願)이 암자를 지었던 곳에 회의(懷義)가 절을 창건하여 청량사(淸凉寺)라 하였고, 920(태조 3) 도선(道詵)이 중창한 뒤 태조의 원당(願堂)이 되었다. 936년 신라가 망하자 대승관(大丞官) 유거달(柳車達)이 이 절에 와서 신라의 시조와 충신 박제상(朴堤上)의 초혼제(招魂祭)를 지내기 위해 동학사(東鶴祠)를 지었다. 그리고 사찰을 확장한 뒤 절 이름도 동학사(東鶴寺)로 바꾸었다.

이 절의 동쪽에 학 모양의 바위가 있으므로 동학사(東鶴寺)라 하였다는 설과, 고려의 충신이자 동방이학(東方理學)의 조종(祖宗)인 정몽주(鄭夢周)를 이 절에 제향하였으므로 동학사(東學寺)라 하였다는 설이 함께 전해진다.

 

초혼각지(招魂閣址 충남문화재기념물 제18): 신라와 고려 그리고 조선의 충신을 모신 동계사, 숙모전, 삼은각.

동계사(東鷄祠): 산라 19대 눌지왕 때에 일본에 인질로 잡혀간 왕의 동생 미사흔을 구출하고 일본에서 순절한 박제상을 936년 류차달이 초혼하여 제사하고 왕명으로 동계사를 건립하였다. 철향되었다가 1956년 중건될 때 류차달도 함께 추배하였다.

숙모전(肅慕殿): 단종의 복위를 꾀하다 발각되어 참형을 당한 사육신과 생육신의 위패를 모신 곳으로 김시습이 단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삼은각(三隱閣): 고려 말에 절의를 지킨 포은(圃隱) 정몽주(鄭夢周), 목은(牧隱) 이색(李穡), 야은(冶隱) 길재(吉再)를 배향.

 













미타암


길상암


관음암



문수암 입구